여행
느린 기차를 타고 알프스를 건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여덟 시간 동안 기차로 달렸다. 창밖이 곧 목적지였다.
이도윤7분 읽기
취리히에서 루가노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나는 가장 느린 길을 골랐다. 완행열차를 세 번 갈아타는 여덟 시간짜리 여정이었다.
창밖이 계속 바뀌는 여행
호수가 지나가고, 목초지가 지나가고, 터널 끝에서 갑자기 눈 덮인 봉우리가 나타났다. 휴대폰을 꺼내는 대신 창에 이마를 대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빨리 도착하는 여행에서는 목적지만 기억에 남는다. 느린 여행에서는 가는 길이 남는다.
루가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하루를 되짚어 보니, 기억나는 건 목적지가 아니라 창밖을 지나간 수많은 장면이었다.